임상 속도·비용 격차에 "중국 배제 자체가 리스크"
[HBN뉴스 = 허인희 기자]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패권과 관련한 하이브리드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등을 앞세워 중국 바이오 기업을 압박하고 있지만, 글로벌 신약 시장에서는 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주요 제약사들은 중국산 신약 후보 물질 확보에 적극 나서며 기술 협력을 확대하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빅파마의 중국 바이오텍 대상 기술 도입 계약은 최근 들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선급금 5000만 달러 이상의 대형 거래 가운데 금액 기준 약 75%가 중국 유래 자산인 것으로 집계됐다. 자본은 미국으로 집중되는 반면, 신약 파이프라인은 중국에서 조달되는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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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중국 바이오 기업을 압박하지만, 빅파마들은 오히려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다.[사진=픽사베이, TUMISU] |
중국 바이오 기업의 기술수출 규모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올해 1분기 해외 기술수출 계약 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이상 증가하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라이선스 거래 규모가 급증하면서 중국이 핵심 기술 공급처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주요 제약사들의 행보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미 공시 및 공식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미국 화이자는 중국 바이오 기업과 잇따라 계약을 체결하며 비만 치료제와 항암제 후보 물질 권리를 확보했고, 길리어드 사이언스 역시 중국 기업과 대형 계약을 통해 면역세포 기술을 도입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프랑스 사노피 등도 중국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며 파이프라인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시간 경쟁’이 좌우하는 구조로 해석된다. 신약 개발은 특허 기간과 시장 선점 효과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산업으로, 출시 시점이 수년만 늦어져도 매출 기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은 임상시험 환자 모집 속도가 미국·유럽 대비 2~5배 빠르고, 초기 발견부터 임상시험계획(IND) 승인까지의 기간도 50~70%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 개발 비용 역시 미국의 20~50%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특정 지역을 배제하는 선택이 개발 일정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 파이프라인 확보에 나서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체 연구개발보다 외부 기술 도입을 선호하는 흐름도 강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미 임상 단계에 진입한 후보 물질을 도입하는 ‘라이선스 인(License-in)’ 전략이 자본 효율성과 성공 확률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글로벌 바이오 산업 구조도 재편되고 있다. 과거에는 연구개발부터 생산까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통합 모델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기술은 중국에서 확보하고 자본과 상업화는 미국이 담당하는 역할 분담형 구조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정치권의 규제 기조와 시장의 실제 움직임 간 괴리도 커지는 양상이다. 현재 발의된 생물보안법 초안 및 법조계·산업계 분석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특정 중국 기업의 생산·서비스 이용을 제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신약 후보 물질 자체의 지식재산권(IP) 거래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구조는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빅파마 입장에서는 생산 거점 조정을 통해 중국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 바이오 산업의 전략적 대응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국은 글로벌 신약 파이프라인 비중에서 약 10% 수준으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주요 플레이어로 평가되지만, 임상 속도와 파이프라인 경쟁력 측면에서는 격차가 존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기업들은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후기 임상 단계의 유의미한 파이프라인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한국 바이오 산업 전반의 구조적 과제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글로벌 신약 시장은 정치적 구도와 별개로 움직이고 있으며, 중국은 이미 핵심 기술 공급처로 자리 잡았다”며 “국내 기업들도 단순 생산을 넘어 경쟁력 있는 후보 물질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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